공정경제 강화 본격화, 시장의 힘은 어떻게 재배치될까 썸네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업무보고를 통해 공정경제 강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대·중소기업 간 거래 질서 개선과 민생 분야 공정경쟁 확산, 플랫폼과 AI 등 디지털 시장 규율 강화, 대기업집단에 대한 감시까지 전방위적인 개편이 담겼습니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제때 제값을 받는 시장’을 만들고, 경제 회복 국면에서도 구조적 불균형이 고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공정경제를 성장의 제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하도급·가맹 거래, ‘제때 제값’이 작동하는 구조로

공정위는 하도급과 가맹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제때 제값’을 제도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과 직접지급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납품대금 연동제를 에너지 비용까지 확대해 원가 변동이 대금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작업중지로 비용이 발생할 경우 하도급기업의 대금조정 권리를 보장하고, 안전비용 전가 관행을 집중 점검하는 점도 눈에 띕니다. 가맹 분야에서는 모바일 상품권 수수료 전가 등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행위까지 점검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는 불공정 관행을 사후 제재에 그치지 않고, 거래 구조 자체에서 차단하겠다는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술탈취와 협상력 문제, 구조적 대응으로 전환

기술탈취와 갑을 불공정행위에 대한 대응도 한층 강화됩니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술보호 감시관 제도를 확대하고, 직권조사를 늘리는 한편 피해기업의 소송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됩니다.

특히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단체행동과 협상권 강화를 검토하겠다는 점은 의미가 큽니다. 개별 사업자의 힘만으로는 불공정 거래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민생·디지털 시장, 일상 속 불공정을 정조준

식품, 교육, 건설, 에너지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과 독과점에 대한 점검도 강화됩니다. 공연·예식·구독경제 등 일상 소비 영역의 불공정 약관과 다크패턴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상조·장례 분야의 소비자 보호 장치도 보완할 계획입니다.

디지털 시장에서는 플랫폼과 AI를 활용한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행위에 대응합니다. 배달앱과 대리운전 플랫폼의 수수료와 약관을 점검하고, AI를 활용한 허위·과장 광고와 가격 표시 왜곡 행위를 차단합니다. 가상인물 표시 누락을 기만광고로 규정하는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이 뚜렷합니다.

대기업집단 규율, 감시와 유인 사이의 균형

대기업집단에 대해서는 내부거래와 사익편취, 우회적 자금지원 등 반칙 행위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강화됩니다. 과징금 부과 기준을 정비하고, 반복 위반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동시에 첨단전략산업과 벤처 분야에 대한 투자는 활성화하되,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병행합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례 적용에 공정위 사전 승인과 지역 투자 조건을 붙이고, 일반지주회사의 CVC 투자를 확대해 벤처투자를 촉진하는 방식입니다. 규율과 혁신 인센티브를 동시에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대목입니다.

결론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업무계획은 공정경제를 선택 가능한 정책 옵션이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장 운영의 기본 조건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도급과 민생, 디지털 시장과 대기업집단을 포괄하는 접근은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두기에는 힘의 불균형이 구조화됐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은 단기적으로는 부담으로 보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혁신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번 정책은 얼마나 강하게 집행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규칙이 작동하는 시장을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겠다는 의지를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